아내와 같이 재미 삼아 그리고 가능하면 부업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.

아직 발행은 하지 않았다.

아내가 진행할 일은 어느 정도 됐는데, 내가 할 일은 영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.

게으른 남편이다.

 

새벽에 첫번째 영상에 쓸 화면을 위해 출사를 나갔다.

오늘 챙긴 장비는 예전부터 갖고 있던 소니의 핸디캠 HDR-Pj820과 삼각대 VCR-VPR10이었다.

 

계획은 이랬다.

구리시 외곽의 한적한 도로에서 애마 금디의 소프트 탑을 오픈시킨 후 삼각대와 카메라를 설치하고 미속 전진하면서 원하는 씬을 촬영한다.

아주 심플한 생각.

 

차 위에서 찍을 곳을 보니 줌을 땡기는 게 좋을 것 같았다.

그렇게 촬영을 하고 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.

 

 

망했다.

광량이 부족한데 롱샷(long shot)을 쓰니 사물이 뭉개진다.

 

그래서 이번엔 와이드샷(wide shot)으로 다시 찍었다.

 

또 망했다. 캄캄한 데서 카메라를 조작해 놓고 차 안으로 와서 운전하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, 차 지붕이 나오는 걸 확인 못했다.

 

그런데, 찍은 걸 확인하고 나서 차를 돌리다가 사건이 터졌다.

카고에 세워둔 삼각대가 경사로에서 회전할 때 차 밖으로 떨어졌고, 금디의 뒷바퀴에 깔리고 만 것이었다.

아... 비싼 건데!

 

카본 재질의 다리 하나가 바스라졌고, 그 편린들이 훼손 정도를 살피던 내 손바닥에 가시가 되어 박혀 들었다. 아프다.

손바닥이 쓰리고, 마음이 아렸다. 밴딩을 해둘 걸.

 

할 수 없이 카메라를 차 안에 설치했다. 망가진 삼각대의 남은 두 다리로 시트에 카메라를 지지시키고 재촬영을 했다.

이전의 결과물들보단 괜찮을 뻔 했는데, 야밤에 부지런한 덤프트럭이 나타나서 원하는 화면을 찍을 수가 없었다. 좀 기다리고 싶었지만, 내 뒤에도 한 대가 더 따라와서 그냥 진행할 수밖에 없었고.

 

 

 

이후 촬영을 더 하다가 조수를 구해서 다시 오거나, 아님 오늘 찍은 영상들을 적당히 잘라 붙여서 쓰거나 해야겠다 맘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.

 

길바닥엔 얼음이 얼 정도로 날씨가 추워진 밤, 첫번째 출사는 이렇게 종료됐다.

 

왜 아이재인가?

 

숨 가쁘게 살아온 것 같진 않다. 밑바닥을 기는 인생이지만서도 충분히 게으른 삶이었다.

아주 오래전부터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고, 부모가, 주변 사람들이, 그리고 사회가 주인이었기 때문에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다 죽으면 그만인 게다.

 

그게 진실이든 착각이든 나로선 그렇게 인식을 했고 그렇게 생각하며 살게 된 이유에 대해선 언젠가 얘기할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 잘 모르겠다.

그런 걸 구구절절이 늘어놓는다고 내 삶이 달라지는 게 아니란 걸 잘 아니까.

 

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고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지 못하면서 "이번 생은 틀렸어"라고 자조하기엔

내 삶이 아직 30~40년은 남았다는 걸 오늘 깨닫게 되었다.

(물론 난 점쟁이도 염라도 아니니까 오늘날 한국 남성의 평균 수명을 고려했을 때 그렇단 거다.)

 

나보다도 더 나를 사랑하고

나보다도 더 나의 가치를 알고

나보다도 더 내 묻어둔 꿈과 재능을 안타까워하는

내 사랑하는 아내의 눈빛에서 발견한,

'인생 2회차' 때나 꺼내보려던 '열정'을 지금 태워보려고 한다.

 

중년이라는 제약에서 벗어나

다시 아이가 돼보려고 한다.

이젠 빛나는 원석이라고 할 수도 없이 때가 찌들어 있을지도 모를 나의 탤런트를

차근차근 연마해보기로 했다.

 

나이 먹은 남성이니까 아재다.

나잇값을 못하니까 나이만 먹었으니까 애나 다름없다.

그래서 어른인데 아이란 뜻으로

아이재(아이+아재)란 말을 만들었다.

ChildMan.

 

어떤 또 다른 계기가 있기 전까지는

이 이름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련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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